광주 북한군 개입이 사실인 이유. 작가 한강의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작성자
예군
작성일
2024-10-14 09:33
조회
543
신전대협의 발전을 빕니다
회원분들 좋은 가을 누리세요
ㅡ작가 한강의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광주 북한군 개입이 사실인 이유ㅡ
1.김일성이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2.전두환도 말했다.
3. 김대중 시절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지낸 권영해도 구순을 넘은 올해 북한군 개입을 인정했다.
4.당시 사태가 진압된 후 계엄사가 시민군에 반납을 촉구해 받거나 찾아낸 총 중에 국군 총이 아닌 카빈총이 많이 수거되었다. 북한군이 폭동 시작전에 미리 거사에 참여한 김대중측 행동조에 나눠줘 같이 무기고와 교도소 습격하고 계속 사용하게 했거나 광주서 사망한 삼백여 명 북한군이 가졌던 총일 수 있다.
5.북한엔 당시 남파 활동 중 죽은 자 삼백여 명 위령제를 해마다 지내는 곳과 무덤도 있다(현장 사진도 휴민트, 즉 북한 정보원에 의해 찍혀 밝혀짐)
사망자만 삼백 여명이면 부상자나 다치지 않고 돌아간 북한군은 최소 열 배? 당시는 cctv도 많이 없었으니 해상으로 침입했나? 보라빛 호수 저자 말로는 광주서 북한까지 육로로 6시간만에 갔다 한다
6. 탈북자들의 증언.
7.당시 광주 시청 공무원의 증언.
8. 당시 김대중과 남파 특수군 사이의 연락책이던분이 탈북해 쓴 보라빛 호수에서의 증언.
9. 미국 CIA의 해제된 기밀문서에도 북한 특수군의 광주 남파가 나온다
10. 지만원님의 사진들
위 증거들 중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당시 북한선 매일 종일 광주 현장을 특파군 활동으로 방송하여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을 남한인들이 참말로 모르는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너무 이상했다, 북한 교과서에도 실린 건데".
광주 시청 공무원 증언은 "북한군용 카빈총을 직접 수거. 지인이 시내 나가는 버스 탔는데 강제로 화순 산골에 버스채 잡혀 가니 북한말 쓰는 장발들이(당시 장발 유행, 남파용 특수부대인 1010 부대에서 남한인처럼 장발에 남한 말씨 훈련시킴)이장 집 마당에 사람들 모았는데 이장 딸을 그 자리서 쏘아죽였는데 이장이 항의 못하고 사람들에게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하더라고."
보라빛 호수 저자의 증언은 "당시 그 일로 북한 가서 유공자 포상받았다, 포상 자리에 자기는 두 번째 받는데 한 번은 며칠간 불타고 천 가구 이상 이재민 발생한 전라도 이리역 방화사건이었다고. "
박사이면서 김대중도 총애한 지만원님이 제시한 사진엔 장발들이 긴 총을 든 채 시청앞 광장에서 여러 시민들을 머리는 땅에 박고 허리는 위로 올리고 엎드린 자세 시켜놓고는 웃으면서 킬킬거리는 사진 있음.
그 총든 자들이 북한군 아닌 시민군이면 공갈협박죄로 잡아넣어야지 유공자 되면 됨?
시민군에 끌려간 국군 ㅣ명이 백 군데도 더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게 그냥 평상복처럼 입은 북한군 소행이냐 시민군 소행이냐? 국군은 장발 아닌 짧은 머리인 거 모르는 바보도 있냐?
무장 경비들이 지키는 교도소 무기고 습격을 북한군 아닌 총없는 일반 시위대가 했다고?
그해 5월 아닌 1월에 김대중이 농민들에게 거사도 대비하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기사가 올해초 네이버에 떴음.
그러니 518은 보라빛 호수 저자 증언처럼 김대중이 김일성과 상호연락하며 치밀하게 계획된 거사라 본다
당시 경찰 기동대를 출동시켜 초기 시위를 막아야 할 담당 총책임자가 김대중이 말한 "거사"에 미리 동참했는지 몇 시간씩 전화를 안 받고 잠수타서 시위 군중이 불어나며 격렬하여지고 시민군들이 교도소 습격, 무기고 탈취, 시청 접수까지 하니 뒤늦게야 국군을 투입.
근데도 국군 일부가 시민군에 포위되고 쫓겨 옥상까지 도망갔었다는. 국군도 동료가 백 군데도 넘게 훼손되어 시체로 발견되니 위기감을 느꼈겠고.
나는 박정희 장기집권 반대 시위하던 자다 전두환 싫어해서 TV 뉴스에서 얼굴 보는 것도 싫어했지만(나이가 들고 보니 당시 간첩들 무장 공비들도 있던 시절이고 박정희도 시해됐으니 그의 얼굴이 늘 긴장된 표정이고 풀릴 상황이 아닌 매우 엄중한 시대였음이 이해된다)
전두환과 인사위원회가 임명한 계엄사령관 이희승이 남파 북한군이 섞인 시민군을 진압한 것은 광주와 광주민들 수호, 국가 수호 차원이었다고 본다.
여튼 518은 현재 알려진 것이 실체가 아니란 거다 그건 치밀히 계획된, 남파 북한군도 가세한 정권탈취 위한 김대중의 실패한 쿠데타다
518 시대 시위자로서 말하는데, 그 전해 박정희 하야 촉구 집회가 격렬하다가 그 분위기에 편승한 김재규의 박통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대통령 대리로 오른 최규하 총리 주축으로 국민들 눈치 보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최규하가 박통 임기를 마저 채우든지 아님 조기선거 하면 되니 대학생들 시위도 전국적으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근데 뜬금없이 5ㅣ8 이 발발했다 그래서 이건 아니지 싶어 납득이 좀 어려웠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단 성경말씀.머잖아 북한 정권 붕괴후 저절로 온 세상에 알려질 북한군 개입이다.
광주 시민들은 자신들을 선동하고 희생시킨 자들이 진정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이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광주와 나라를 지킨 이희승 계엄사령관의 책임 아닌 책임까지 전두환에 뒤집어 씌워 악마화한 것에 속은 전라민들 특유의 좌편향적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나온 한강의 글은 소련 공산독재 체재를 비판했던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달리 역사의 진실을담지 않고 진영 논리에 빠진 책이라 역사적으론 생명력이 길지 않을지도.
역사를 감독도 허구라 말한 서울의 봄류 보고 배워선 안 된다
1212는 전두환 쿠데타가 아닌, 장기 집권자인 박정희를 살인한 김재규와 공모자 정승화의 쿠데타를 당시 그들 수사하고 적법히 처리해야 할 담당 부서장인 보안사령관이란 운명을 가진 전두환이 목숨 걸고 진압한 사건이다
최규하가 전두환이 거듭 요구한 정승화 체포를 허락했으면, 그래서 정승화가 오히려 전두환을 수사 못하게 외지로 좌천시키려 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 이후 5ㅣ8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전두환은 군대조직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정권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고 따라서 통일주체 국민회의란 대의 기관 통해 간접 선거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뽑는 민주 선거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어쨌건 전두환으로 인해 대통령이 될 기회가 미뤄진 김영삼, 김대중은 전두환을 악마화 시켰다 이희승이 당시 계엄사령관이 전두환 아닌 자신이라고 재판서 강변해도 수용치 않고 정권의 눈치를 보던 판사는 무조건 전두환을 심판했다
다만 검사는 전두환의 1212가 법적으로 쿠데타가 아닌 쿠데타 진압행위임에 내란죄는 성립이 되지 않아 그건 정권이 직접 재판하거나 역사가 심판할 일이라며 기소치 않고 당시는 요즘처럼 정치자금법이 없어 비공개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선거철에 후보들에 나눠줘 선거자금하게 했다는. 그건 노무현 김영삼 김대중에도 이어짐) 문제만 기소했다 한다
그리고 김영삼이 대통령 되어서 비자금이 김대중 측에 들키자 그들이 시키는 대로 광주 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격상시키고 그에 대해 언급치도 못하게 법제화 했다 한다
그게 말이 되냐? 모든 역사적 사실은 두고두고 검증되어야 한다
조선시대도 반정으로 일어난 임금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전임 임금 정권을 무조건 비하하나 후세인들은 새로 밝혀지는 사실들이 있으면 그 역사기록을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광주사에 왈가왈부 검증을 못하게 막는 것이야말로 떳떳치 못하고 구린내만 엄청 진동하는 거짓, 조작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정당하고 당당하면 자신있게 공개, 비판의 검증대에 올릴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다시 전두환 재판을 전두환이 법원 지역 기피 신청내어도 광주서 하면서
이희승씨가 당시 진압 지휘권은 전두환 아닌 계엄 사령관인 자신에게 있다고 재판정서 강변해도 수용치 않았고 광주시민들은 출퇴정하는 구십세 전두환에게 계란, 돌 던지기를 하며 갖은 모욕과 소란으로 극심히 괴롭혔다
노벨상만 탔으면 의인이면 전두환도 대통령 됐으니 추앙해야지? 핵대중 평화상은 북한에 돈 퍼주고 산 상이고 남한에 핵협박을 안긴 여적죄적 매국 행위였다 518때 남파 특수군 사령관의 비서로서 '보라빛 호수' 저자는 김일성이 말하길 김대중에 건넨 돈이 많고 앞으로 수십 수백 배로 받아낼 수 있다고 했다 함. 그러니 김대중은 김일성의 입을 막기 위해서도 북한에 엄청난 돈, 당시 15억만 달라를 보냈다. ㅣ달러를 천 원으로 쳐도 ㅣ조 오천억인데 당시 남한 경제력 규모가 많지 않을 때니 천문학적 돈이고 IMF로 숱한 상공인들, 국민들이 빚에 몰려 자살할 때이다
이때 김대중은 그 돈으로 북한이 핵을 만들면 어쩌냐는 여론에 북한은 핵 만들지 않는다며 보냈고 그후도 김대중의 수족인 박지원이 북한에 많은 돈을 보낸 여적죄가 드러나서 감옥에 갔으니 탄로나지 않게 보낸 돈들이나 물자, 돈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
그후 북한은 핵을 만들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의 공갈협박으로 우리 국민들을 위협하며 남한의 돈과 물자를 상생, 원조 형식으로 심심찮게 뜯어댔다
그런 518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진짜 원수가 아닌, 광주와 광주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 그와 결탁한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구하려던 전두환과 이희승 , 상관 명령에 따라 죄없이 국방 의무에만 충실했고 그 과정에 그들도 정신의 상흔을 입은 계엄군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우는 편향된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기에 노벨상 수상을 온전히 축하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강이 진실을 대상으로 하는 진정한 문학인이라면 나중에 518 실체가 더 확실하지는 날 노벨상 반납을 선언해야 긴 역사 동안 사랑받는 수상자가 될 것이다.
아무런 증거없이도 이웃간에 서로 증인만 서주면 유공자 등록되어 포상금 및 각종 지원금 받고 공무원 시험 대입 가산점 획득. 심지어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마다 유공자가 늘어나는 건? 시민군으로서 무기고 교도소 시청 습격 접수한 거나 국군과 전투에 가담 이라도 했고 그래서 유공이냐? 그때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은 건 유공자가 아닌 피해자고 따라서 유공 포상이 아닌 피해자 보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 유공 많으면 유공자 명단 까야지 걸핏하면 특검하자는 더붉당서 왜 518 유공자 명단 까란 특검은 못하게 하지?
광주 시민이 아닌 문제인 이해찬 추미애 이희승 임종석 등이 유공자에 포함된 것이 말이 되냐? 그러니 그건 김일성 장학금(실재했음. 수령자 증언도 있고 보안사도 알고 있었고 CIA 기록도 있음)이라도 받았는지 모를 운동권 간부들이 미리 계획대로 광주에 가서 시위 뛰었다는 거?
광주 사태는 재규명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 뿐 아니라 참전 용사까지 수 백만 명 사상자, 고아 기아자들을 만들고 국토와 각종 산업기반을 폐허로 만들어 극빈국이 되게 한 6.25 남침을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과 6.25 동란시 잃은 영토 수복, 경제 국방 교육을 도왔고 우유 옥수수 빵 등 무상 구호품을 전국 학교에 보내었던 미국을 남한서 러중과 땅따먹기 대리전쟁한 욕심국가로 몰아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 인성인 감사를 갖추기는 커녕 배은망덕한 한강을 절대 존경할 수 없다
노벨문학상이 유럽 남자들 위주로 주어진다는 세계 비판을 잠재우려 올해는 아시아권 여성을 주기로 정햇는데 중국여성 후보는 반체제 인사라 시진핑 눈치 보이고, 러우 전쟁으로 인해 유럽서 한국 무기들이 인기를 누리고 한국 위상이 높아지니 이참에 한국 환심 사보자는 계산, bts를 위시해 k컬쳐세계인들에게 대세니 세계인들 비위 맞추자는 생각에서 선정된 건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글은 단순할 기교만 아닌 올바른 생각이 담겨야 한다 최소한 왜곡은 말아야 한다!
회원분들 좋은 가을 누리세요
ㅡ작가 한강의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광주 북한군 개입이 사실인 이유ㅡ
1.김일성이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2.전두환도 말했다.
3. 김대중 시절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지낸 권영해도 구순을 넘은 올해 북한군 개입을 인정했다.
4.당시 사태가 진압된 후 계엄사가 시민군에 반납을 촉구해 받거나 찾아낸 총 중에 국군 총이 아닌 카빈총이 많이 수거되었다. 북한군이 폭동 시작전에 미리 거사에 참여한 김대중측 행동조에 나눠줘 같이 무기고와 교도소 습격하고 계속 사용하게 했거나 광주서 사망한 삼백여 명 북한군이 가졌던 총일 수 있다.
5.북한엔 당시 남파 활동 중 죽은 자 삼백여 명 위령제를 해마다 지내는 곳과 무덤도 있다(현장 사진도 휴민트, 즉 북한 정보원에 의해 찍혀 밝혀짐)
사망자만 삼백 여명이면 부상자나 다치지 않고 돌아간 북한군은 최소 열 배? 당시는 cctv도 많이 없었으니 해상으로 침입했나? 보라빛 호수 저자 말로는 광주서 북한까지 육로로 6시간만에 갔다 한다
6. 탈북자들의 증언.
7.당시 광주 시청 공무원의 증언.
8. 당시 김대중과 남파 특수군 사이의 연락책이던분이 탈북해 쓴 보라빛 호수에서의 증언.
9. 미국 CIA의 해제된 기밀문서에도 북한 특수군의 광주 남파가 나온다
10. 지만원님의 사진들
위 증거들 중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당시 북한선 매일 종일 광주 현장을 특파군 활동으로 방송하여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을 남한인들이 참말로 모르는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너무 이상했다, 북한 교과서에도 실린 건데".
광주 시청 공무원 증언은 "북한군용 카빈총을 직접 수거. 지인이 시내 나가는 버스 탔는데 강제로 화순 산골에 버스채 잡혀 가니 북한말 쓰는 장발들이(당시 장발 유행, 남파용 특수부대인 1010 부대에서 남한인처럼 장발에 남한 말씨 훈련시킴)이장 집 마당에 사람들 모았는데 이장 딸을 그 자리서 쏘아죽였는데 이장이 항의 못하고 사람들에게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하더라고."
보라빛 호수 저자의 증언은 "당시 그 일로 북한 가서 유공자 포상받았다, 포상 자리에 자기는 두 번째 받는데 한 번은 며칠간 불타고 천 가구 이상 이재민 발생한 전라도 이리역 방화사건이었다고. "
박사이면서 김대중도 총애한 지만원님이 제시한 사진엔 장발들이 긴 총을 든 채 시청앞 광장에서 여러 시민들을 머리는 땅에 박고 허리는 위로 올리고 엎드린 자세 시켜놓고는 웃으면서 킬킬거리는 사진 있음.
그 총든 자들이 북한군 아닌 시민군이면 공갈협박죄로 잡아넣어야지 유공자 되면 됨?
시민군에 끌려간 국군 ㅣ명이 백 군데도 더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게 그냥 평상복처럼 입은 북한군 소행이냐 시민군 소행이냐? 국군은 장발 아닌 짧은 머리인 거 모르는 바보도 있냐?
무장 경비들이 지키는 교도소 무기고 습격을 북한군 아닌 총없는 일반 시위대가 했다고?
그해 5월 아닌 1월에 김대중이 농민들에게 거사도 대비하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기사가 올해초 네이버에 떴음.
그러니 518은 보라빛 호수 저자 증언처럼 김대중이 김일성과 상호연락하며 치밀하게 계획된 거사라 본다
당시 경찰 기동대를 출동시켜 초기 시위를 막아야 할 담당 총책임자가 김대중이 말한 "거사"에 미리 동참했는지 몇 시간씩 전화를 안 받고 잠수타서 시위 군중이 불어나며 격렬하여지고 시민군들이 교도소 습격, 무기고 탈취, 시청 접수까지 하니 뒤늦게야 국군을 투입.
근데도 국군 일부가 시민군에 포위되고 쫓겨 옥상까지 도망갔었다는. 국군도 동료가 백 군데도 넘게 훼손되어 시체로 발견되니 위기감을 느꼈겠고.
나는 박정희 장기집권 반대 시위하던 자다 전두환 싫어해서 TV 뉴스에서 얼굴 보는 것도 싫어했지만(나이가 들고 보니 당시 간첩들 무장 공비들도 있던 시절이고 박정희도 시해됐으니 그의 얼굴이 늘 긴장된 표정이고 풀릴 상황이 아닌 매우 엄중한 시대였음이 이해된다)
전두환과 인사위원회가 임명한 계엄사령관 이희승이 남파 북한군이 섞인 시민군을 진압한 것은 광주와 광주민들 수호, 국가 수호 차원이었다고 본다.
여튼 518은 현재 알려진 것이 실체가 아니란 거다 그건 치밀히 계획된, 남파 북한군도 가세한 정권탈취 위한 김대중의 실패한 쿠데타다
518 시대 시위자로서 말하는데, 그 전해 박정희 하야 촉구 집회가 격렬하다가 그 분위기에 편승한 김재규의 박통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대통령 대리로 오른 최규하 총리 주축으로 국민들 눈치 보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최규하가 박통 임기를 마저 채우든지 아님 조기선거 하면 되니 대학생들 시위도 전국적으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근데 뜬금없이 5ㅣ8 이 발발했다 그래서 이건 아니지 싶어 납득이 좀 어려웠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단 성경말씀.머잖아 북한 정권 붕괴후 저절로 온 세상에 알려질 북한군 개입이다.
광주 시민들은 자신들을 선동하고 희생시킨 자들이 진정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이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광주와 나라를 지킨 이희승 계엄사령관의 책임 아닌 책임까지 전두환에 뒤집어 씌워 악마화한 것에 속은 전라민들 특유의 좌편향적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나온 한강의 글은 소련 공산독재 체재를 비판했던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달리 역사의 진실을담지 않고 진영 논리에 빠진 책이라 역사적으론 생명력이 길지 않을지도.
역사를 감독도 허구라 말한 서울의 봄류 보고 배워선 안 된다
1212는 전두환 쿠데타가 아닌, 장기 집권자인 박정희를 살인한 김재규와 공모자 정승화의 쿠데타를 당시 그들 수사하고 적법히 처리해야 할 담당 부서장인 보안사령관이란 운명을 가진 전두환이 목숨 걸고 진압한 사건이다
최규하가 전두환이 거듭 요구한 정승화 체포를 허락했으면, 그래서 정승화가 오히려 전두환을 수사 못하게 외지로 좌천시키려 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 이후 5ㅣ8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전두환은 군대조직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정권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고 따라서 통일주체 국민회의란 대의 기관 통해 간접 선거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뽑는 민주 선거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어쨌건 전두환으로 인해 대통령이 될 기회가 미뤄진 김영삼, 김대중은 전두환을 악마화 시켰다 이희승이 당시 계엄사령관이 전두환 아닌 자신이라고 재판서 강변해도 수용치 않고 정권의 눈치를 보던 판사는 무조건 전두환을 심판했다
다만 검사는 전두환의 1212가 법적으로 쿠데타가 아닌 쿠데타 진압행위임에 내란죄는 성립이 되지 않아 그건 정권이 직접 재판하거나 역사가 심판할 일이라며 기소치 않고 당시는 요즘처럼 정치자금법이 없어 비공개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선거철에 후보들에 나눠줘 선거자금하게 했다는. 그건 노무현 김영삼 김대중에도 이어짐) 문제만 기소했다 한다
그리고 김영삼이 대통령 되어서 비자금이 김대중 측에 들키자 그들이 시키는 대로 광주 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격상시키고 그에 대해 언급치도 못하게 법제화 했다 한다
그게 말이 되냐? 모든 역사적 사실은 두고두고 검증되어야 한다
조선시대도 반정으로 일어난 임금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전임 임금 정권을 무조건 비하하나 후세인들은 새로 밝혀지는 사실들이 있으면 그 역사기록을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광주사에 왈가왈부 검증을 못하게 막는 것이야말로 떳떳치 못하고 구린내만 엄청 진동하는 거짓, 조작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정당하고 당당하면 자신있게 공개, 비판의 검증대에 올릴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다시 전두환 재판을 전두환이 법원 지역 기피 신청내어도 광주서 하면서
이희승씨가 당시 진압 지휘권은 전두환 아닌 계엄 사령관인 자신에게 있다고 재판정서 강변해도 수용치 않았고 광주시민들은 출퇴정하는 구십세 전두환에게 계란, 돌 던지기를 하며 갖은 모욕과 소란으로 극심히 괴롭혔다
노벨상만 탔으면 의인이면 전두환도 대통령 됐으니 추앙해야지? 핵대중 평화상은 북한에 돈 퍼주고 산 상이고 남한에 핵협박을 안긴 여적죄적 매국 행위였다 518때 남파 특수군 사령관의 비서로서 '보라빛 호수' 저자는 김일성이 말하길 김대중에 건넨 돈이 많고 앞으로 수십 수백 배로 받아낼 수 있다고 했다 함. 그러니 김대중은 김일성의 입을 막기 위해서도 북한에 엄청난 돈, 당시 15억만 달라를 보냈다. ㅣ달러를 천 원으로 쳐도 ㅣ조 오천억인데 당시 남한 경제력 규모가 많지 않을 때니 천문학적 돈이고 IMF로 숱한 상공인들, 국민들이 빚에 몰려 자살할 때이다
이때 김대중은 그 돈으로 북한이 핵을 만들면 어쩌냐는 여론에 북한은 핵 만들지 않는다며 보냈고 그후도 김대중의 수족인 박지원이 북한에 많은 돈을 보낸 여적죄가 드러나서 감옥에 갔으니 탄로나지 않게 보낸 돈들이나 물자, 돈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
그후 북한은 핵을 만들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의 공갈협박으로 우리 국민들을 위협하며 남한의 돈과 물자를 상생, 원조 형식으로 심심찮게 뜯어댔다
그런 518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진짜 원수가 아닌, 광주와 광주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 그와 결탁한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구하려던 전두환과 이희승 , 상관 명령에 따라 죄없이 국방 의무에만 충실했고 그 과정에 그들도 정신의 상흔을 입은 계엄군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우는 편향된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기에 노벨상 수상을 온전히 축하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강이 진실을 대상으로 하는 진정한 문학인이라면 나중에 518 실체가 더 확실하지는 날 노벨상 반납을 선언해야 긴 역사 동안 사랑받는 수상자가 될 것이다.
아무런 증거없이도 이웃간에 서로 증인만 서주면 유공자 등록되어 포상금 및 각종 지원금 받고 공무원 시험 대입 가산점 획득. 심지어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마다 유공자가 늘어나는 건? 시민군으로서 무기고 교도소 시청 습격 접수한 거나 국군과 전투에 가담 이라도 했고 그래서 유공이냐? 그때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은 건 유공자가 아닌 피해자고 따라서 유공 포상이 아닌 피해자 보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 유공 많으면 유공자 명단 까야지 걸핏하면 특검하자는 더붉당서 왜 518 유공자 명단 까란 특검은 못하게 하지?
광주 시민이 아닌 문제인 이해찬 추미애 이희승 임종석 등이 유공자에 포함된 것이 말이 되냐? 그러니 그건 김일성 장학금(실재했음. 수령자 증언도 있고 보안사도 알고 있었고 CIA 기록도 있음)이라도 받았는지 모를 운동권 간부들이 미리 계획대로 광주에 가서 시위 뛰었다는 거?
광주 사태는 재규명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 뿐 아니라 참전 용사까지 수 백만 명 사상자, 고아 기아자들을 만들고 국토와 각종 산업기반을 폐허로 만들어 극빈국이 되게 한 6.25 남침을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과 6.25 동란시 잃은 영토 수복, 경제 국방 교육을 도왔고 우유 옥수수 빵 등 무상 구호품을 전국 학교에 보내었던 미국을 남한서 러중과 땅따먹기 대리전쟁한 욕심국가로 몰아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 인성인 감사를 갖추기는 커녕 배은망덕한 한강을 절대 존경할 수 없다
노벨문학상이 유럽 남자들 위주로 주어진다는 세계 비판을 잠재우려 올해는 아시아권 여성을 주기로 정햇는데 중국여성 후보는 반체제 인사라 시진핑 눈치 보이고, 러우 전쟁으로 인해 유럽서 한국 무기들이 인기를 누리고 한국 위상이 높아지니 이참에 한국 환심 사보자는 계산, bts를 위시해 k컬쳐세계인들에게 대세니 세계인들 비위 맞추자는 생각에서 선정된 건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글은 단순할 기교만 아닌 올바른 생각이 담겨야 한다 최소한 왜곡은 말아야 한다!